‘극한 폭염’이 일상이 된 여름철, 몇 천 원을 쓸 수 있는 시민이라면 찜통더위를 피하고자 ‘무더위쉼터’보단 ‘카페’를 찾는다. 접근성, 편의성은 물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좋기 때문이다.
무더위쉼터는 모든 시민을 위해 지정·운영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주 이용객은 대부분 주머니 사정이 얇은 폭염 취약계층이다. 대구 곳곳에는 1천여 개의 무더위쉼터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한낮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중구 반월당지하상가, 수성구 범어아트웨이, 달서구 두류지하상가 등 한정돼 있다. 이곳들은 모두 접근성, 편의성을 충족하는 곳이다.
대구일보는 지역에 있는 대다수 무더위쉼터가 이름뿐으로 전락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대구시가 나아가야 할 정책 방향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눈치 보여요”...민간 대표 무더위쉼터
폭염경보가 이어진 지난 23일 오후 1시 대구 중구 반월당에 있는 한 시중은행. 내부는 시원했고, 의자도 마련돼 있어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식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참을 둘러봐도 더위를 피하려고 찾은 시민은 보이지 않았다. 업무를 보기 위해 방문한 고객들만 창구를 오갈 뿐이었다.
은행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과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대표적인 무더위쉼터다. 하지만 시민들은 “은행은 괜히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여요”라는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볼일 있어 온 게 아니라, 냉방만 이용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남구의 한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기온이 절정에 달하는 오후 2~3시 편의점에 머물러 본 결과, 장시간 머무르는 시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편의점을 찾은 시민 대부분은 음료수를 사거나 간단한 간식을 구매한 뒤 자리를 떴다. 단순히 편의점 이용객인 셈이다.
해당 편의점 점주는 무더위쉼터 지정 배경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명6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무더위쉼터로 운영해 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이용자는 많지 않다. 환경미화원이나 요양보호사분들이 잠깐 와서 쉬었다 가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무더위쉼터 큰 비중 차지하는 ‘경로당’
무더위쉼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설은 경로당이다. 대구시가 운영하는 무더위쉼터 1천199곳 가운데 746곳(62.2%)이 경로당이다. 숫자만 보면 폭염 취약계층인 노인들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현실은 달랐다. 취재진은 지역 경로당 10여 곳을 직접 찾았다. 대부분 아파트단지 안이나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고, 상당수는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오후 시간대였음에도 인기척이 없는 곳도 있었고, 운영시간을 알리는 안내문조차 없는 곳도 있었다.
문이 열려 있는 경로당 역시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창문 너머로는 회원들끼리 담소를 나누거나 TV를 시청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외부인이 잠시 더위를 피하려고 들어가기에는 심리적인 장벽이 느껴졌다.
폭염 기간에는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지만, 이를 아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 중 상당수가 “경로당은 회원들만 이용하는 곳 아니냐”, “괜히 들어갔다가 눈치만 볼 것 같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야외쉼터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야외시설은 더욱 의문이 남는다. 수성구 범어도서관 야외광장은 무더위쉼터 명단에 포함됐다. 이곳에서는 그늘 아래 시민 2~3명이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었지만, 폭염 저감시설이 없었다. 의자 대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야외정원과 공원도 무더위쉼터로 지정할 수 있지만, 실제 이용시간은 대부분 해질 무렵에 집중된다. 폭염이 가장 심한 오후 1~3시에는 오히려 이용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주로 야간 시간대 이용을 위해 지정됐지만, 극한 폭염으로 인한 열대야가 발생하는 요즘엔 적합하지 않았다. 야외쉼터에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정도였다. 결국 이름만 무더위쉼터인 셈이다.
◆‘개방’과 ‘이용’ 사이 큰 간극
취재진이 무더위쉼터를 점검해본 결과, ‘개방’과 ‘이용’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존재했다.
이에 대해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를 ‘물리적 접근성’과 ‘심리적 접근성’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쉼터는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접근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물리적 접근성과 심리적 접근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설명한 물리적 접근성은 계단이나 경사로처럼 실제 이동이 가능한 환경을 의미한다. 그는 “노인이나 장애인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심리적 접근성도 매우 중요하다”며 “은행처럼 업무를 보지 않는데 오래 머물면 눈치가 보이는 곳은 실제 이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로당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폭염 기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고 해도 ‘인식’ 탓에 이용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로당은 여전히 회원들만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무더위쉼터의 경우 행정안전부 앱 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실질적인 안내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교수는 “앱으로 검색하라고 하는 것은 젊은 세대 기준의 접근방식”이라며 “노인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안내와 주변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 홍보방식도 이용자 계층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더위쉼터는 이미 충분한 숫자가 확보된 만큼, 앞으로는 ‘몇 곳을 지정했는가’보다 ‘얼마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나’가 정책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구시, 무더위쉼터 한계 보완
대구시는 현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올해 이동형 무더위쉼터를 새롭게 도입했다.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는 노점상과 폐지 수집 어르신, 배달기사 등 이동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쉼터로 기존 고정형 쉼터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이동형 무더위쉼터는 오는 9월16일까지 휴일 없이 상시 운영된다. 시는 전통시장과 공원, 도심 등 시민들의 편리한 쉼터 이용을 위해 접근성이 좋고,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 10곳에서 냉방버스를 운영한다. 자원봉사자를 배치해 안내를 돕고, QR코드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기사 원문 : https://www.idaegu.com/news/articleView.html?idxno=664564